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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신작인 ‘인랑’입니다. 

  

원작은 보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볼 일도 없을 겁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실망했습니다. 

  

감독의 네임밸류에 비춰 봐도 실망스럽고, 영화 자체만 놓고 봐도 실망스럽습니다. 

  

장점은 꽤 명확한 영화입니다. SF 영화의 볼모지인 한국에서 (원작의 힘도 어느정도 있었겠지만) 꽤 그럴 듯한 사이버 펑크 디스토피아 영화를 만든 것부터 이미 박수를 쳐 줄만한 일입니다. 

  

최근 액션 영화의 경향에 역행하는, 느릿하면서도 특유의 묵직한 느낌이 잘 살아있는 액션 연출은 굉장합니다. 화려한 동작이나 현란한 카메라 워크 없이 단순하고 우직한 액션 스타일은 앞으로 특유의 기계 슈트와 함께, ‘인랑’이라는 영화에서 가장 먼저 기억될 이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영화 최대 장점은 강동원입니다.




190cm가 넘는 장신, 떡 벌어진 어깨,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한 눈빛까지. 

  

강동원은 그저 서있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히 표현합니다. 그저 잘 한 캐스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뛰어난 캐스팅입니다. 

  

하지만, 단점 역시 매우 뚜렷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관객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세계관입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영화 내의 주요 설정들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문제를 짚어 볼까요?

  

영화는 청각 예술의 요소도 갖추고 있지만, 그 근간은 시각 예술입니다. 영화는 움직이는 영상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전달합니다. 소설에서 몇 페이지를 할애하는 인물 묘사도, 영화에서는 사소한 행동을 프레임에 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설정과 배경을 설명한다는 것은, 제작진이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관을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걸 실패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비단 설정뿐만 아니라, 공안부와 특기대의 대치는 그 배경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합니다. 또, 제작진이 만든 절망과 불안감으로 가득한 2029년은 평화로운 빵집의 광경과 함께 무너져 내린지 오래고요. 

  

영화의 영상은 화려하지만, 의미를 상실한 영상은 그저 속 빈 강정에 불과합니다. 

  

굳이 특기대가 과잉 진압을 하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냥 의경이 무기를 들고 진압하면 왜 안 되는지. 왜 특기대가 2029년인데도 50년대에 만들어진 총을 들고 다니는지. 왜 한국에서 활동하는 극좌 반통일 단체의 이름이 ‘섹트’가 되어야하는지.

  

제작진이 그린 그림은 예쁘지만, 모든 부분에서 ‘왜?’라는 질문을 수반합니다.

  

아마 원작이 되는 일본 영화를 각색하는 단계에서 나온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굳이 관객 입장에서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이해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유명 배우로 가득 찬 캐스팅은 대단하지만, 정작 인물에 대한 묘사는 지리 멸렬하고, 연기 역시 엉망입니다. 




대표적으로, 한효주와 강동원의 첫 만남은 재편집, 혹은 재촬영이 필요한 수준의 재앙입니다.

  

20년 가까이 활동해 온 배우들의 연기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에 가까운 호흡이나 대사처리는 둘째 치더라도, 일본어를 직역한 느낌의 문어체 대사는 어색하고, 로맨스의 흐름은 어색해서, 서로의 처지에 공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져야 할 두 남녀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결국 각본과 연출의 문제입니다. 

  

어설픈 대사와 상황 설정은 각본 단계에서 조율이 가능했을 거고, 연기 문제는 현장 연기지도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영화는 이렇게 나와 버렸습니다. 

  

또 다른 큰 문제로는 편집 문제를 들고 싶습니다. 

  

가령 초반부, 시위 장소와 저수지에서 특기대가 나타나는 부분을 봅시다. 겁에 질린 섹트 대원들을 위협하는 특기대원들의 그림자와 육중한 발소리로 특기대의 위압감을 효과적으로 묘사합니다. 시각적 요소를 제한하고, 청각적인 요소를 극대화함으로서, 섹트 대원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소리와 그림자를 통해 공포를 느끼는’ 상황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강화 복을 입은 특기대원이 뜬금없이 섹트 대원과 방을 불태웁니다. 바로 그 다음 장면에 겁에 질린 섹트 대원들 앞에 특기대원의 강화 복 특유의 붉은 안광이 화면을 메우고요. 

  

제대로 된 영화였으면, 붉은 안광이 화면을 메우는 장면을 먼저 넣어, 특기대원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긴장감과 위압감을 극대화했어야합니다. 그렇지만, 두 장면의 순서가 바뀌는 바람에,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위압감과 긴장감은 맥이 끊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편집할 거였으면, 차라리 붉은 안광이 화면을 메우는 장면은 빼버렸어도 됩니다. 아니면, 화염 방사기를 쏘는 부분에서 가급적 특기대원의 노출을 최대한 피했어야죠. 

  

김지운 감독 영화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이해가 가지 않았던 편집 미스입니다. 단순 실수라고 보기에는 영화 전체의 편집이 그렇게 매끄러운 편도 아니었고요. 

  

또, 영화 결말부에서 멕거핀으로 전락해버린 빨간 모자 이야기 메타포 역시 말이 많더군요.

  

‘늑대에게 잡아먹힌 빨간 모자(한효주) 이야기에서, 원망해야 할 건 문을 열어준 할머니인가, 아니면 늑대인가(혼란스러운 사회)’라는 영화 내내 노골적으로 반복되던 이야기는, 엔딩 부분에서 그 의미가 상실됩니다. 

  

임준경(=늑대)이 이윤희(빨간 모자)를 무감각하게 죽여야만(잡아먹어서), 영화가 그 누구에게 원망하지도 못한 채 늑대에 먹혀버린 빨간 모자 이야기에 완벽하게 대입이 되는데, 정작 김지운 감독은 이걸 장진태(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미는 늑대의 이야기로 변주해버립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크게 해쳤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영화의 논점을 벗어난 엔딩도 아니에요. 단지 제가 말한 건 반어적인 거고, 김지운 감독이 택한 건 직접적인 방식일 뿐이죠.

  

그렇지만, 감독이 택한 엔딩이 과연 개연성과 영화의 복선들을 무시하고 강행할 만한 수준이었는지는 그냥 영화를 본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는 게 맞을 듯합니다. 

  

다만, 저는 제가 몰입해서 봤던 이야기가 의미 없이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장점도 명확하지만, 단점이 그 이상으로 명확했던 영화입니다. 뛰어난 비주얼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 안에서 저는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18.07.25. Love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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