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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파라마운트 사에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후속작 개봉 일자를 삭제했더군요. 사실상 취소죠, 뭐. 비슷한 예인 퍼시픽 림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개봉 일자 날아간 것과 비슷하죠.


2.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퍼시픽 림은 2차 시장에서도 흥했고, 관객평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프랜차이즈 크리에이터이자 감독인 길예르모 델 토로가 이 작품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즉, 상황만 다시 좋아지면 후속작의 제작은 언제든 시작할겁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크리에이터인 스티븐 리스버거, 그리고 현재 감독인 조셉 코신스키를 비롯한 제작진이 큰 애정을 가진 트론 시리즈가 그러합니다만....) 하지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뭐, 이하 생략합니다. 당장 제임스 카메론 부터가 후속작들에 대해서 시큰둥했는데. 물론 제니시스에는 좋은 평을 했다지만서도, 참...


3. 사실 가만 보면 카메론이 영화를 평가해서 좋았다고 한 영화 중에 괜찮은 게 많이 없었죠. 하록 영화판도 이게 뭔가 싶었고, 제임스 카메론 본인이 제작을 맡고 호평한 생텀은 참으로 허무한 영화였고...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도 그걸 피해가지는 못하더군요.


4. 사실 터미네이터는 시리즈로 나오면 안되는 영화였다고 봐요. 이미 1편에서 시리즈의 시작과 완결을 다 지어버렸는걸요. 사실 터미네이터2도 1을 놓고 보면 그냥 사족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터미네이터2는 1에서 만든 '역사는 바꿀 수 없다'라는 기본 전제 조건을 날려먹은 영화잖아요. 완성도가 어찌됬건간에 말이죠. 하지만, 터미네이터2가 그래도 전작보다 좋은 평을 받고 끝날 수 있었던건, SF 액션 영화라는 장르에 맞게 훌륭하게 연출된 액션과 특수효과, 그리고 이 두가지를 관객으로 하여금 지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만든 훌륭한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영화 자체의 극장판 엔딩이 모호하게 처리된 감이 있다고는 해도, 그래도 시리즈 자체의 주제를 잘 강조한 결말을 보여줬기때문이죠.


5. 그렇지만, 2편에서 1편의 '역사는 바꿀 수 없다'는 전제를 한 번 날려먹고, 그리고 무엇보다 2편이 크게 흥한 덕에, 3편이 나오게 됩니다. 3편은 2편의 느낌보다는 1편의 느낌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존 코너는 1편의 사라 코너 처럼 유약하고 미숙한 면이 크게 강조됩니다. 터미네이터의 이미지도 2편에서 보여진 인간과 교감을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에서 다시 차가운 기계의 이미지로 돌아갔습니다. (악역이든 선역이든, 터미네이터의 이미지가 다시 그렇게 돌아갔어요.) 전작에서 바뀐 희망적인 미래는 사라져버리고, 1편에서의 다소 세기말적 분위기가 다시 강해졌죠. 


6. 하지만, 이 영화가 1편과도 또 크게 달라져버린 건 바로 결말 때문일겁니다. 1편에서 어찌됬거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든,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게된 사라 코너를 보여주는 엔딩은, 어쨌거나 세상이 멸망하게 될거라는 암시가 있더라도, 그 미래가 올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미래를 맞이하게 될 주인공 사라 코너가 더 이상 그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것임을 분명하게 해서, 오히려 희망적인 느낌을 줍니다. 


7. 근데 3편은 상황이 달라요. 일단 주인공인데도 심하게 무기력한 존 코너부터가 그래요. 분명히 터미네이터2의 사회에 부적응한 상태로 정신병원에 갖히게된 사라 코너를 오마쥬한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해서 깨뜨리려는 모습을 보이는 사라 코너와 다르게, 3의 존 코너는 2편의 사건을 거친 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심판의 날을 두려워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폐인이 됩니다. 즉, 정해진 규칙에 저항해보려고 하는 시도조차 안해요, 터미네이터가 나타날때까지도요. 심지어 터미네이터가 나타난 후에도 뭐 하나 제대로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하죠. 


8. 이미 여기서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가 암시됩니다. 정해진 미래에 제대로된 저항 조차 안하는 존 코너의 모습에서, 이미 2편처럼 정해진 미래가 바뀐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그 정해진 미래가 그대로 찾아올거라는 암시죠. 거기에 존과 그의 미래의 아내인 케이트를 보호하기 위해서 찾아온 터미네이터의 목적은 주인공 일행을 따라 자신이 만들어지는 미래를 없애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신이 태어나는 미래로 주인공들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영화 후반부의 T-850의 '우리는 다시 만날거다'라는 대사가 이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다보니, 전작에서 보여지던 T-800의 인간미는 이 영화에 있어서는 그렇게 까지 필요는 없게되었죠. 덕분에 이 영화에서 T-850의 인간미는 존과 케이트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재부팅하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9. 그러다보니 존과 케이트가 차마 영웅이 될 준비도 덜 끝난 상황에서 암울한 엔딩은 찾아옵니다. 주인공들은 미숙하기 짝이 없는데, 갑자기 걸려온 무선은 그들을 후일의 저항군 영웅으로 만들어버리죠. 덕분에 제대로된 마음가짐을 가지고 계속 싸울 것임을 다짐하는 존 코너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옴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엔딩은 암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마 제가 본 SF 액션 영화 프랜차이즈들의 엔딩 중에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우울한 엔딩일거예요. 싸움을 다짐했지만, 이 영화의 엔딩에서는 어떠한 희망적인 이미지도 보이지 않아요. 전세계는 잿더미고, 이제 스카이넷은 그들을 찾아 죽이기 위해 돌아다니겠죠. 심지어 존 코너가 전쟁을 끝낼 것이고, 과거로 카일리스를 보낼것이라는걸 알아도, 엔딩에서 보여진 잿빛 폐허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희망적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죠.  


10. 아이러니한건, 이 엔딩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에는 크게 기여했습니다. 분명히 이 영화는 다른 터미네이터 영화들과 그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다른 영화예요. 이른바 요즘 말하는 멘붕물이라고 할 수 있죠. 주인공들이 온갖 발버둥을 쳐도 정해져 있는 암울한 결말은 결국 찾아와버렸죠. 희망따윈 없어요. 주인공들이 처음부터 뭐를 하던간에 결국은 멸망으로 끝났을 영화입니다. 다만, 이런 류의 영화는 안일하게 접근했다가는 뒷맛만 더럽게 남기고 영화적 재미는 재미대로 못 살리는 경우가 많은데, 터미네이터3의 경우에는 그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결말로 향할때 까지의 영화의 구조는 탄탄하고, 주인공들의 성격과 행동도 잘 짜여져 있죠. 그리고, 훌륭하게 짜여진 액션씬들은 이 영화의 지나치게 암울한 분위기를 어느정도 상쇄해냅니다.


11. 제작진들이 말했 듯이, 전작을 넘으려는 야심은 처음부터 없었던 영화예요. 하지만, 이 영화에는 한 편의 뛰어난 디스토피아물을 완성하려는 야심은 있었어요. 실제로 그걸 성공해냈고요. 분명히 1, 2편을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뛰어난 영화였어요. 전작에서 느끼지 못했던 썩은 맛과 씁슬한 분위기도 쓸만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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